[회암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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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주문화원 댓글 0건 조회 131회 작성일 19-06-1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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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재 지 :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회암리 산14-1

이 절터는 천보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창건에 관한 자료가 없어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고려 충숙왕 15년(1328)경에 승려 지공(指空)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가람의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중국에서 돌아온 나옹(懶翁)이 중건하였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제자들이 계속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자초(自超, 무학대사)가 머물면서 태조의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 조선 성종 3년(1472)에 세조비 정희왕후가 다시 중건하였는데, 현재의 기단과 석축(石築) 등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상당수 남아 있다. 중종비인 문정왕후는 불교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회암사에 거처하던 승려 보우(普雨)가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불교 중흥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문정왕후의 죽임 이후 보우(普雨)는 중신들의 상소로 죽음을 당하였는데 이로 인해 보우(普雨)가 머물렀던 회암사도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회암사는 지공(指空)이 창건한 이래 보우(普雨)가 거처하던 때까지 약 200년 가량 번창하다가 그후 절의 세력이 계속 기울어 폐사가 되었다.

회암사는 8개 기단으로 이루어졌다. 제1단 석단으로부터 제8단 석축벽까지 단을 차이나게 하여 건물을 조성하였다. 확인된 건물지는 약 30여개 소에 이르며 건물배치는 고려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다른 사찰과는 매우 다르다. 제1단부터 제8단까지 높이를 달리한 점, 대규모의 축단과 석단·석벽을 조성한 점, 세로로 이어지는 건물 배치, 주축(主軸)을 중심으로 한 좌우대칭의 전각 배치, 돌계단 옆면을 막아 세우는 소맷돌의 치석수법 등은 궁궐 건축에서 나타나는 기법으로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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